나는 하늘을 처음 만나는 어린 새처럼 하늘을 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늘을 보세요. 그리고 하늘 숨을 깊고 길게 들이쉬세요. 그러다 보면 당신에게서도 하늘 냄새가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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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연재기사]30년을 뛰어넘은 그들만의 '우정'

경호무술창시자 2010. 9. 29. 10:37

 

30년을 뛰어넘은 그들만의 우정


입력날짜 : 2010. 09.29

 

조일환 회장과 이재영 총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그들은 30년이라는 나이차를 넘어 피보다 진한 그들만의 우정을 나누었다.

한명은 '밤의 황태자'로 불리면서 대한민국 건달계의 큰 형님으로 통했던 의송 김두한의 마지막 후계자 협객 조일환 회장, 다른 한명은 경호무술창시자로서 대한민국 '경호업계의 대부'로 통하는 이재영총재

30년 이상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어느 누구보다 진한 그들만의 우정을 나누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이재영총재를 만나 그들만의 얘기를 들어본다.

Q조일환회장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하다 보니 당연히 무술과 연관된? '건달'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조일환회장님과 고향 또한 같다보니 조일환회장님의 명성은 학창시절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 경호원으로 활동하면서 우연히 몇 번 소개를 받기도 했지만 내가 국제경호무술연맹의 모태인 한국경호공사와 한국경호무술협회를 설립하면서 그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금은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하나의 직업군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경호산업의 초창기 시절만 해도 건달들이 하던 음성적인 일들이 양성화되면서 경호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나가는 과도기였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경호원들과 건달들이 밥그릇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형국이었고 건달계의 큰 형님으로 통했던 조일환회장님과 경호회사의 대표인 나는 서로 '적대 적' 으로 만나게 되었다.

Q인연을 맺게된 계기가 무엇인지.
처음 본 조일환회장님의 이미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풍채가 좋으셨으며 호랑이 같다는 강렬한 느낌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단 자상하고 인자하셨다. 주먹은 주먹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여러 차례 조일환회장님을 뵙게 되면서 회장님에게 강한 카리스마와 남자다움에 반하여 속칭 식구? 가 되었으며 회장님을 큰 형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많은 시간 회장님과 함께 하면서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때마다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길 원하셨지만 30년 이상 나이차이가 나는 회장님께 감히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이후 오히려 ‘큰형님’이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Q특별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회장님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밤의 대통령으로 통했었고 그런 만큼 회장님의 주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건달들 이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평생 협객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건달이 아닌 정통무술인인 나를 더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것 같다.

또한 회장님은 항상 나를 동생이자 연맹 총재로 대우해 주셔서 속칭 보스? 급의 대우를 해주시다 보니 주위 잘나가는 건달들로부터 시기와 견제를 받을 정도였다.

건달들의 생활은 항상 긴장된 생활의 연속이다. 언제 작업? 을 당할지 모르고 언제 자신의 위치를 위협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친분관계는 ‘보디 존’ 즉 사람과 사람의 거리관계에서 서열과 친밀도를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가장 최 측근에 두고 활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는 항상 회장님의 옆에서 회장님의 그림자가 되어 회장님과 함께 했다.

Q주량이 대단했다고 하던데.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나보다 더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보다 술을 더 잘 드셨으니 회장님의 술은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또한 아무리 술을 많이 드셔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으셨다. 아마도 당신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그분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작고하시기 전까지도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소주를 맥주글라스로 10잔 이상 마시셨고 갈비4인분을 드시고도 갈비탕까지 드실 정도로 식욕 또한 왕성하셨다.

Q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의 큰 별이 지셨다고 회고하던데
회장님을 모르는 분들은 회장님이 대한민국 건달계의 대부로서만 살아가신 걸로 기억하겠지만 회장님은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신 애국자이자 협객이셨다. 많은 사람들은 회장님을 생각하면서 육영수여사 피살 사건 때 일본에 대한 항의로써 손가락을 자르신 ‘단지사건’ 을 기억하지만 회장님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제일 앞장서 오신분이다.

사재를 털어 전국에 무궁화 심기운동을 전개하셨고 우리나라에 피가 부족하여 수입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전국적인 헌혈운동을 전개하시기도 하셨다. 항상 어느 장소에 들어가던지 태극기만 보이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회장님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을 맡았던 ‘미션’이라는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 “그들은 죽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것은 저고 산자는 그들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조일환(1938년~2009년 7월 13일)은 김두한의 후계자로 알려진 인사. 별명은 '천안곰'.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열일곱살이 되던 해방 전후 충남 천안 지역 주먹계를 평정한 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 당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천안 시내 유관순 동상 앞에서 새끼손가락을 잘라 항의한 바 있다. 2005년 3월에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의 망언과 신사참배, 역사 교과서 왜곡 중단 반성을 촉구하며 조씨의 아내와 아들이 손가락을 절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특정 사안에 대한 항의표시로 온 가족이 손가락을 절단한 것은 조씨 집안이 처음이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기독교에 귀의했다.

KBN /전명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