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날짜 : 2011. 0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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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호무술을 통해 많은 분들을 만나고 많은 분들과 인연을 맺었지만 그 중 굿이 품격을 말한다면 아마도 권영민 고문님을 꼽을 것 같다! 지금은 의형제로 지내고 있지만 권영민 고문과의 처음 만남은 어떻게 보면 어색하고 또 어떻게 보면 전혀 어울리지 않는 만남이었던 것 같다.
연맹에 후원과 도움이 될 거라는 주위 사람의 소개로 권영민 고문님을 처음 일식집에서 만났을 때는 속으로 '오늘 또 괜히 건달하나를 사귀게 되었구나!' 하고 후회를 했었다. 비싼 일식집에서 양쪽으로 한 10명가량 동생? 들을 앉혀놓고 식사를 하는 모습을 보면서 실망할 때쯤 "자네가 이재영 총재인가 얘기 많이 들었네! 술 한 잔 하게!" 그렇게 술 한 잔 하면서 처음인연을 가지게 되었다.
권영민 고문을 만나기 전부터 나는 이미 김두한의 마지막 후계자로 알려진 조일환 회장과 인연을 맺고 있었기 때문에 정말 많은 건달들을 만났고 그들과 생활도 같이? 하면서 건달들의 생리와 생활을 누구보다 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나는 건달, 아니 깡패가 싫었다.
그런데 권영민 고문님과의 처음 만남자리가 자신을 건달 보스? 처럼 포장하는 자리라는 것을 느끼면서 더 이상 인연을 맺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내 생각과는 달리 권영민 고문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처음 생각과는 달리 윗사람을 모실 줄 알고 동생들을 사랑하며 정말 사람들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 건달이 아닌 성공한 사업가로서 많은 사람들에게 인정과 존경을 받는 보기 드문 남자였다.
당신 자신이 남자들의 세계를 좋아 하셔서 건달인척 하는 부분도 있었기 때문에 처음에 그런 오해도 했었던 것 같다. 나는 그런 권영민 고문님과 의형제를 맺고 10년 넘게 인연을 이어가고 있다. 연맹 행사 때는 총재로서 나를 받들어 주시지만, 행사가 끝나고 함께 소주한잔 할 때는 형님으로서 내게 많은 조언을 해주셨다. 나는 그런 권영민 고문님에게 많이 의지도 했었다.
또한 항상 연맹행사라면 누구보다 먼저 후원과 도움을 주시는 권영민 고문께 이 글을 빌어 감사의 인사를 전해 드린다.
권영민 고문은 나에게 가장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신 분이다.
중동 번화가에서 권영민 고문과 술 한 잔 하는 어느 날 갑자기 소나가기 내리기 시작했다. 그것도 지나가는 소나기가 아닌 정말 장대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렇게 사람이 많았던 중동 번화가 거리는 갑자기 모든 사람들이 모두 실내로 들어가 버려서 거리에는 장대비만 내릴 뿐 단 한사람도 없었다.
모두가 1,2층의 술집에 들어가서 창밖의 비를 감상하고 있을 때쯤 갑자기 권영민 고문님께서 한 술집에 들어가서 비 내리는 중동 번화가 거리 한가운데에 파라솔을 치라는 것이었다. 술집주인은 권영민 고문님이 단골인지라 무척 난감해 하다 결국은 파라솔을 치게 되었다.
그렇게 비가 내리는 아무도 없는 중동 번화가 거리의 한가운데서 나와 권영민 고문은 파라솔을 치고 술을 마셨다. 비 때문에 실내에 들어가서 술을 마시고 있는 모든 사람들이 이 창밖의 희귀한 장면을 보면서 아마도 말도 많았을 것이다.
나는 그때는 정말 쪽팔리기도 하고 실내 1,2층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는 것 같아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그 당시 머리를 길러 뒤로 묶고 있었기 때문에 머리가 비에 졌어 정말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하지만 권영민 고문께서는 처음부터 항상 여유롭고 이런 것을 생활에 일부분이라는 듯이 즐기고 있었다. 나 또한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술에 취하면서, 어느새 사람들을 의식하기 보다는 그런 분위기를 즐기면서 '정말 이런 것도 있구나!' 하고 생각을 하면서 나 또한 다른 사람에게 이런 아름다운 추억을 만들어 주어야 갰구나! 하고 다짐을 했었다. 하지만 난 아직 까지 그 약속을 실행하지 못하고 있다.
사람에게는 품격이라는 것이 있다.
사실 나는 시골의 부유하지 못한 집안에서 자라났고 매일시장 어물가게 "명랑상회" 막내아들로 생활하면서 항상 고개를 숙이시는 부모님을 보고 자랐기 때문에 나 또한 연맹을 운영하면서 누가 나를 대우해주거나 고개를 숙이는데 익숙하지 않았고 남 앞에 나서는 그런 분위기를 무척이나 어색해 왔고 지금도 그런 것 같다.
하지만 권영민 고문은 만석꾼의 집안 삼대독자로서 어려서부터 부유하게 자랐기 때문에 그에게는 자연스럽게 품어져 나오는 품격과 여유로움이 있었다. 나는 그 품격과 여유로움을 부러워하기도 하고 배우려고 노력도 많이 했지만 그런 품격과 여유로움은 쉽게 생겨지지가 않았다.
조선시대 신분사회가 엄격할 때 양반과 천민이 있었다. 지금도 우리는 양반을 말하면서 양반은 체통 때문에 비가 오면 비를 맞으면서도 뛰지도 않고, 아무리 배가 고파도 아무데서나 식사를 하지 않는다고 조롱하듯이 말한다. 하지만 나는 그 체통이 바로 품격이고 소수의 양반이 많은 양민과 천민들을 지배할 수 있는 힘이 아닌가? 생각을 해본다.
천민은 더운 여름날 어디서나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누울 수 있지만 양반은 아침 일찍부터 저녁 늦게까지 의관을 정제하고 생활해야 했었다. 누군들 윗도리를 벗어 던지고 시원한 나무 그들 아래에 눕고 쉽지 않았을까? 만약 그것이 임금이라면 어떠했을까?
한 가지를 예를 든 것 이지만 그런 하나하나의 품격이 모아져 사람을 여유롭고 크게 만드는 것 같다. 나는 그런 아름다운 품격을 지니고 있는 권영민 고문이 부럽다.! 나 또한 경호무술지도자로서 그런 품격을 지니도록 노력할 것이다!
글/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
정리/전명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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