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을 처음 만나는 어린 새처럼 하늘을 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늘을 보세요. 그리고 하늘 숨을 깊고 길게 들이쉬세요. 그러다 보면 당신에게서도 하늘 냄새가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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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

경호무술창시자 2022. 9. 23. 08:14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대한민국국토대장정, 사진 350장)

    

<성공한 이의 과거는 비참할수록 아름답다>

“추락하는 것은 날개가 있다.”라는 말처럼 나는 높이, 높이 한없이 높이 올라갔다가 추락하고 추락하여 땅바닥까지 아니 땅속까지 처박혀 봤다. 지금도 그렇다. 테러를 당해 인공 안구 뼈를 이식받기도 하고, 회칼에 찔려 죽음의 문턱도 가봤다. 처, 자식도 잃고 이혼도 해봤다. 노숙자도 되어봤다. 몸뚱이 하나를 제외하곤, 아니 그 몸뚱이조차도 미친놈처럼 술만 마시다 당뇨로 이가 빠지고 몸무게가 50kg 가까이 빠지며 건강도 잃어봤다. 집도, 절도, 건강도 모든 것을 잃어봤다. ‘산머리에 떠 있는 조각구름 한 덩어리, 무슨 기댈 곳이 있었겠는가!’

 

이때 나에게 모든 것은 울부짖는 소리로 들렸다. 다른 사람의 말이 울부짖는 소리로 들리고 나의 울음도, 아니 웃음조차도 울부짖는 것으로 들렸다. 개의 짖는 소리, 새소리, 심지어 바람 소리도 울부짖었다. ‘너무 울어 텅 비어버렸는가, 이 매미 허물은’ 그렇게 추락하고 추락할 때마다 나에게 힘이 되어준 한 마디가 있다. “성공한 이의 과거는 비참할수록 아름답다.”

 

<상처가 없다면 살지 않은 거나 다름없다>

한 번 다친 마음의 상처는 거의 치유되지 않는다. 다만 그 상처가 있다는 것을 잊고 있을 뿐이다. 그렇기에 상처를 극복하려면 피하는 것이 아닌 느끼는 거다. 계속 가는 것이다. 비겁하지 않은 지점으로, 그 지점이 곧 ‘절정’이다. 절정은 사람마다 다 안다. 뒤로 물러나야 할까? 말까? 사람마다 경우는 다르지만, 그때, 물러나 본 사람은 안다. ‘내가 다시 이 절정에 설 수 있을까?’ 그때 힘들고 아프더라도 넘어갔으면 됐는데, 산에 올라가다 실패한 사람들은 항상 그곳에서 머문다.

 

첫사랑에 실패한 사람들도 넘어졌던 그 자리에서 매번 실패를 반복한다. 거기까지는 잘 가는데 그다음으로 못 넘어간다. 그래서 첫 번째 사랑을 했을 때 끝장을 봐야 한다. 모든 걸 걸어야 한다. 그러다 상처를 받았을 땐 피하려 하지 말고 온몸으로 느껴라. 피할 수 없으면 부딪히는 거 다 그렇게 부딪히며 극복하는 것이 아닌, 주저앉으며 배우는 거다. 상처를, 고통을, 그만큼 느끼는 거다. ‘몸이 젖으면 비를 더는 두려워하지 않는다.’

 

인생에서도 마찬가지다 추락하고 바닥까지 떨어져서 삶이 너무 힘들고 고통스럽고 무서울 때가 있다. 그때 주저앉으면 더는 일어설 수가 없다. 그래서 다리가 후들거리고 아프더라도 일어서서 한 발짝이라도 무조건 가야 한다. 목숨을 걸어야 한다. 아예 몸이 굳을 때가 있다. 숨이 막힐 때가, 겁이 날 때가, 그러면 억지로라도 걸어야 한다. 죽을힘을 다해 그렇게 한 걸음 더 나가면 그만큼 고통을 더 느끼게 되고 그만큼 성숙해지는 거다. 나는 그렇게 좀 더 단단해지고, 성숙해지기 위해, 지금도 항암치료를 받으며 암과 투쟁 중이다. 아파야 성숙한다. 그것이 삶이다. ‘대추가 저절로 붉어질 리는 없다. 저 안에 태풍 몇 개, 천둥 몇 개, 벼락 몇 개’

 

<다시 시작한다는 거>

한 번도 과거로 돌아가고 싶다거나 다시 살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다. 물론 지금도 그렇다. 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조차도. 하지만 이제 지난날들에 대한 후회가 밀려오고 있다. 열심히 인생을 살지 못한 잘못, 하는 일에 최선을 다하지 못한 게으름, 자신의 가치를 찾기보단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가식. 나이를 먹어가는 것일까? 왜 이렇게 비틀거리며 살아왔을까? 자존감을 느끼지 못하고, 의연하지 못하고, 두려움에 쫓기어 살아온 인생인 것 같다. 천박한 모함과 비난의 발길질들이 잔혹하게 짓밟아도 견디어 왔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나는 허세와 가식으로 가득 차 있었던 것 같다.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이제 어쩌면 늦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그래도 나는, 이제 나의 나머지 삶을 다시 시작한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삶은 좀 더 당당하게 좀 더 의연하게 살겠다고 다짐한다. ‘처음으로 하늘을 만나는 어린 새처럼, 처음으로 땅을 밟고 일어서는 새싹처럼’

 

나는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익히 잘 알고 있다. 이번 시도도 성공하리란 보장이 없다는 것을, 그렇지만 난 다시 시작한다. 시도했던 모든 것이 물거품이 되더라도 이 또한 또 하나의 전진이기에. ‘홍시여, 이 사실을 잊지 말게 너도 젊었을 때는 무척 떫었다는 걸’

 

불교의 경전『숫타니파타』에는 이런 가르침이 있다. “만일 그대가 지혜롭고 성실하고 예절 바르고 현명한 동반자를 만났다면, 어떤 어려움도 이겨내리니 기쁜 마음으로 그와 함께 가라. 그러나 그와 같은 동반자를 만나지 못했다면 마치 왕이 정복했던 나라를 버리고 가듯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진흙에 더럽히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글: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

 

대한민국국토대장정

(한라에서 백두까지)

 

노가다 그 900일간의 여정

 

나는 그동안의 나의 삶을 되돌아보고 나의 네 번째 책,『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의 생각의 관점』마무리를 위해 딱 100일만 체험하고자 몸으로 사는 삶, 일명 ‘노가다’에 도전했다. ‘모든 출구는 어딘가로 들어가는 입구다.’ 새벽공기를 마시며 건설현장에 나가 노동을 하다 보면 오롯이 몸 하나만 생각하면 된다. 단순하고 깨끗하다. 땀을 흠뻑 흘리면 몸 안의 나쁜 피가 다 빠져나간 느낌이 든다. 등줄기를 타고 흐르는 땀의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것은 새로 태어난 기분과도 같다. 노동은 사람을 깨끗하게 한다. 새벽녘에 만나는 아침이슬처럼.

 

그렇게 밤에는 안전감독관으로 낮에는 건설현장에서 일했다. 내 인생에서 가장 열심히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던 시간이었다. 그렇게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자 욕심이 생겼다. ‘이왕 시작한 거 1,000일을 채우자!’ 그렇게 900일쯤 되었을 때, 몸은 상처투성이였다. 특히 발을 여러 번 다쳤지만, 빨간약과 진통제로 버텼다. 바보같이 여러 사람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병만 키웠다. 그렇게 상처가 덧나고 덧나 병원에 입원했고 1차, 2차 수술 끝에 새끼발가락을 절단을 절단했다. 하지만 난 그래도 웃었다. 왜? 이제는 어떤 시련과 고통에도 웃을 수 있을 정도로 난 강해졌으니까! 다만 1,000일을 못 채운 것이 아쉬울 뿐,

 

퇴원 후 몸과 마음의 다친 상처를 다 치유하고 도복을 입기 전까지 정말 많은 생각을 했다. ‘몸의 가장 끝자락에 있는 하찮은 것 중의 하찮은 것, 그래도 신체의 일부분, 그런데 없다면 제대로 움직일 수 있을까? 뛸 수, 아니 정상적으로 걸을 수 있을까? 경호무술창시자로서 다시 경호무술을 수련하고 가르칠 수 있을까?’

 

하지만 난 다시 도복을 입고 경호무술을 수련하면서 생각했다. ‘모든 시련과 고통이 나를 더 성숙하고 강하게 만들었다. 그래서 나는 하늘에 감사한다. 강한 자는 남과 싸워서 이길 수 있는 자이다. 더욱 강한 자는 모두를 이길 수 있는 자이다. 더더욱 강한 자는 자기를 이길 수 있는 자이다. 진정으로 강한 자는 하늘에 엎드려 감사하는 자이다.’

 

유대인들은 자식이 성년이 되면 인생에서 제일 밑바닥 일과 기술, 3가지를 배우도록 한다고 한다. 그것은 전쟁이나 천재지변 등으로 도시가 폐허가 되거나 자신의 하던 사업이 폭삭 망하는 등, 어떠한 일이 발생하더라도 그 기술이 자신의 가족을 부양할 수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늘의 불행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보복이다.” 나는 나폴레옹의 이 말에 공감하면서도 다르게 생각한다. ‘오늘의 고생은 언젠가 내가 잘못 보낸 시간의 빚을 갚아나가는 것이다. 내가 지금 흘리는 땀의 양만큼 나중에 내 가족들이 눈물을 흘리지 않을 거다.’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李在暎)

 

 경호무술창시자로 국제경호무술연맹(IKF) 총재로 재직하고 있으며 세계 22개국에 30만 명 이상의 제자를 배출하였고, 경호분야에서는 국적을 넘어 ‘경호원들의 영원한 사부(師父)’로 불리 운다. (무도공인 종합 69단) 서울 성동구 행당동 판자촌에서 태어났으며, 고향인 홍성에서 자라 홍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전남과학대 경호보안과를 거쳐, 미국워싱턴 국제보안대학교에서 경호무도학 박사학위를 취득했고 동 대학교 명예총장에 추대되었다.

 

대한방송(KBN), 뉴스타임즈 등 신문과 유력 잡지 등에 칼럼을 기고하여왔으며 대학교, 공공기관, 기업 등에 강의하고 있다. 제자를 지도할 때, 땀을 흘릴 때, 그리고 글을 쓸 때가 제일 행복하다는 저자는 “반백 년을 무인(武人)으로 살았다면 앞으로 남은 생은 글을 쓰며 무인(無人)으로 살고 싶다.”라고 말한다. 저서로는 『경호무술 지도교본』,『보디가드의 세계』,『도복 하나 둘러메고』등이 있다.

 

<주요 이력>

⦁사단법인 대한민국합기도협회 자문위원장(합기도 공인 9단)

⦁사단법인 대한공수도연맹 심판위원장(공수도 공인 9단)

⦁사단법인 세계검도협회 고문(검도 공인 8단)

⦁대만 국제종합무술연맹 지도위원장(종합무술 공인 9단)

⦁서울시태권도협회 기술심의회 자문위원

⦁사단법인 대한삼보연맹 고문

⦁한국범죄퇴치운동본부(ASS) 이사장

⦁한국청소년문화재단 청소년보호위원장

⦁경기대학교 경호비서학과 외래교수

⦁전남과학대학교 무도경호과 객원교수

⦁원광보건전문대학교 경호스포츠과 겸임교수

⦁서울현대전문학교 경찰학부 객원교수

⦁아세아항공전문학교 항공보안학부 교수

⦁교육부 미래창의교육연구원 주임교수

⦁미국 국제보안전문대학교 명예총장

⦁아메리칸스포츠유니버시티(ASU, 미국체육대학교) 초빙교수/무도대학장

⦁저자이메일: kr1993@hanmail.net

⦁인터넷, 유튜브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검색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마지막후계자 조일환회장님과 함께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영원한 친구 김동회옹과 함께

야인시대 실존인물들과 함께 (제일 왼쪽이 이재영총재)

"의리, 의리, 의리"

일본 도쿄베이호텔 경호무술 기술강의와 연무시범중

 

 

미국체육대학교(ASU) 헤리황이사장님과 함께(무도대학장 임명)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 저서

도복 하나 둘러메고 경호무술을 보급하면서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 라이센스

 

경호무술 홍보 및 대회포스터

 1997년 연맹본부도장 홍보포스터 

2002년 연맹본부도장 홍보포스터

 2004년 연맹본부도장 홍보스티커

 2005년 연맹본부도장 홍보포스터

 

 

2006년 경호무술홍보 카다로그 표지  

 

2007년 연맹본부도장 카다로그 표지

2008년 소년소년가장 돕기 및

범죄예방결의대회 포스터

2008년 연맹 포스터

  2010년 재활원 장애우돕기 행사포스터

 

2012년 경호무술신문 제22호 표지 

 이재영총재 2013년 7월 뉴스와이드

표지인물 선정

 2014년을 빛낸 자랑스러운한국인상 시상식 개최

(사)국제경호무술연맹, 한국범죄퇴치운동본부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의 '생각의관점'
국제경호무술연맹(IKF), 한국범죄퇴치운동본부, IKF시큐리티서비스, 코마TV,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와 함께하는 커뮤니티로 경호, 무예, 문화, 예술, 스포츠 등, 인문학에 대한 종합적인 정보를 제공합니다.

 

【네이버 블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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