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을 처음 만나는 어린 새처럼 하늘을 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늘을 보세요. 그리고 하늘 숨을 깊고 길게 들이쉬세요. 그러다 보면 당신에게서도 하늘 냄새가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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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냄새’ 나는 사람(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

경호무술창시자 2023. 12. 13. 16:52

‘하늘냄새’ 나는 사람

 

나에게 다가온 사람

고교 시절 수련하던 도장에 40대의 아저씨가 입관했다. 고생을 많이 한 탓인지 관장님은 그가 50대로 보인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그 당시 합기도 전국대회에서 우승했었기 때문에 입관하는 초보자들에게 기본적인 것들을 지도했고 그는 나에게 ‘조교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며 열심히 배웠다.

 

하루는 그가 야간부 수련이 끝나자 수련생들에게 통닭 파티를 열어줬고 나는 그때 그의 직업이 수덕초등학교 ‘소사’라는 것을 처음 알았다. 당시 초등학교에는 학교에서 숙직하며 잡일부터 청소, 야간경비 그리고 화단이나 나무들을 보살피는 소사가 있었다.

 

자존감과 예술을 일깨워준 사람

그는 내가 합기도 전국대회에서 우승한 것에 대하여 놀라워했고, 홍성고등학교에 다닌다고 하자 대단하다고 말하면서 나에게 문무를 겸비한 ‘사범님’이라고 띄워줬다. 홍고는 시골에서는 매년 서울대를 10여 명 정도 진학하는 지역 명문 고등학교였다. 그렇기에 그와 친해진 이후에는 그는 자신의 지인들에게 나는 소개할 때 합기도대회에서 우승한 것과 홍고에 다니는 자신의 의형제라고 자랑스러워하며 입에 달고 다녔다.

 

그는 도장에 수련하러 오기보단 나를 만나러 올 정도로 우린 친해졌다. 또한, 그는 책 읽기와 글쓰기를 좋아하고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이 많아 나는 그 덕분에 호메로스(Homeros)의『오디세이아』와『일리아드』그리고 일본의 전설적인 검성『미야모토 무사시』와 『오륜서』등의 책을 접하고 문화예술 분야에 호기심을 갖게 됐다.

 

신선이 되고 싶은 화가, 장승업

그런 그가 어느 날은 ‘조선의 마지막 화가’라 불리는 오원(吾園) 장승업의 얘기를 해주었다. 장승업은 그의 이름은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해졌을 무렵, 그는 그림을 원하는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붓을 들어 주었다고 한다.

 

그에게 그림을 받기 위해서는 걸 판진 술 한 상만 차리면 되었다. 술이 몇 잔 들어가고 기분이 얼큰해지면 장승업은 웃옷을 벗어젖히고 즉석에서 붓을 휘둘렀다. 그는 돈이 생기며 생기는 대로 모두 술집에 맡겨 두고 매일 술을 마셨다고 한다. 처음부터 돈 같은 것에는 아예 관심이 없었고 오로지 술과 그림 그리는 일만이 그의 관심사였다.

 

장승업은 유난히 신선 그림을 많이 그린 화가였다. 그가 언제 세상을 떠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다만 평소 장승업은 늘 입버릇처럼 이렇게 말하고 다녔다고 한다. “사람의 생사는 뜬구름과 같은 것이오. 그러니 어디 경치 좋은 곳을 찾아 조용히 사라지는 것이 마땅하지 요란스럽게 앓는다, 죽는다, 혹은 장사를 지낸다, 번거롭게 할 필요가 무에 있겠소!” 그렇게 그는 신선처럼 사라졌다.

 

술과 풍류 그리고 절제를 가르쳐준 사람

그렇게 2년 넘게 그와 인연을 이어갔다. 호적이 한 살 어리게 올려 져 있던 나는 고3 때 성년이 되었고, 성년이 되는 날 그는 술을 가르쳐 주면서 이태백, 김삿갓, 장승업의 풍류를, 그리고 도연명의『귀거래사(歸去來辭)』를 말했다.

 

그러면서 나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요정’이라는 곳에 데리고 갔다. 나는 모범생은 아니었지만, 이때까지 술, 담배는 물론 당구도 못 치고 여자 친구도 사귀어보지 못한, 무술밖에 모르는 무술을 너무나 사랑하는 순진한 학생이었다.

 

그런 나에게 요정은 내가 모르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고급요정 집이라 그런지 술과 풍류가 있었고 거나하게 차려진 한 상 차림은 내가 무슨 대단한 사람이 된 것 같은 착각에 빠지게 했다. 옆에서 한복 차림의 미녀가 가야금을 뜯는 그곳은 나에게는 무릉도원이었다.

 

그는 그날 월급봉투를 통째로 들고 와 ‘객기를 부리는 척’도 했다. 그렇게 신선놀음에 도취해 있을 즈음, 돌연 그가 일어나자고 했다. 그리고 말했다. “그칠 줄 아는 것도 결단이다. 떠날 때가 언제인지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그러면서 나를 수덕초등학교 숙직실에 데리고 갔다.

 

하지만 환락의 세계에 한 번 갔다 온 나는 도저히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그가 잠이 든 것을 확인하고 책상 위에 있던 남은 월급봉투를 들고 그 요정에 다시 찾아갔다. 한밤중이라 그런지 아니면 고급요정이라 그런지 요정은 일찍 문을 닫았고 주위는 칠흑같이 어두웠다.

 

\나는 그렇게 캄캄한 시골길을 밤을 새워 걸었다. 아마 자동차로 30분 이상 걸리는 거리였기에 홍성까지 아침까지 걸었던 것 같다. 부끄럽고 창피한 마음에 힘들고 무서운 줄도 몰랐다. 걷고, 걷고 또 걸었다.

 

용서하는 법과 청춘을 아는 사람

그리고 이틀 후, 그와 만났다. 나에게는 2년 같은 이틀이었다. 너무 부끄럽고 창피해 차마 고개를 들 수조차 없었지만, 그에게 월급봉투를 돌려주며 솔직하게 말했다. 그날 너무 가슴이 뛰고 설레어서 도저히 잠을 잘 수가 없어 그 요정에 다시 갔었다고, 그 여자를 안고 싶었다고, 그리고 오히려 그런 마음을 몰라주는 그가 원망스러웠고, 그러면 그럴수록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미웠다고. 그러자 화를 낼 줄 알았던 그는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영웅호색이라 더니, 자기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말하는 것도 용기다. 자신을 스스로 아끼는 동생이 되어라! 나는 오늘 진정으로 동생이 하나 생겼다!” 그리고 그날 47살의 그와 고등학생인 나는 의형제를 맺었다.

 

그는 내가 무술유단자들의 모임인 ‘무우회(武友會)’를 만들어 회장이 되었을 때는 자기 일처럼 기뻐하였고 우리가 ‘武’ 자가 새겨진 은반지를 맞출 때, 가슴에 ‘馬’ 자가 새겨진 빨간 티셔츠를 30벌 맞춰줬다. 馬 자를 새겨준 이유는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마’같이 청춘을 만끽하라는 이유였다. 그리고 이후 반지와 티셔츠 때문에 학교에서는 불량 서클로 오인, 나는 학생부 주임에게 불려가기도 했다.

 

그리움을 남긴 사람

그리고 시간을 흘러 나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군대에 입대하게 되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3개월도 채 못 되어 입대하는 거라 송별식에는 무우회 친구들은 물론 많은 친구가 모였고 음식과 술값 등 모든 경비를 그가 내주었다. 친구들을 모두 보내고 그와 단둘이 남게 되었을 때, 그가 포옹하며 한마디 했다. “역시 동생은 대단해, 어린 나이에 시험을 보고 군대 갈 결정을 하다니, 동생은 어딜 가든 최고가 될 거야.”

 

가뜩이나 어려운 가정형편 때문에 너무 어린 나이에 입대하는 나로서는 친구들 앞에서는 의연해지려 했지만, 그의 한마디에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그리고 그때가 그와의 마지막이 될 줄은 그때는 미처 생각하지 못했었다.

 

군 생활 중, 휴가 때 집에 갔을 때 어머님이 말씀하셨다. “막내야 이강현씨라는 어떤 분이 네가 너무 보고 싶다고 찾아왔었다. 한 번 꼭 연락해 달라시면서 우시고 가시더라. 그분이랑 무슨 일이라도 있었던게냐? 하도 간절하게 말씀하셔서 내 주소를 가르쳐줬다.”

 

그는 매달 편지를 보냈고 나는 한 번도 답장을 보낸 적이 없었다. 어쩌면 내가 그때 그와 연락하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초등학교 소사인 것이 창피해서일지도 모른다. 또한, 좀 더 넓은 세상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다 보니 그는 나에게 잊혀진 사람이었다.

 

군 제대 후 몇 년간은 나에게 너무나 바쁜 시간이었다. 경호원으로 활동하다 경호회사를 창업했고 시간은 빠르게 흘렀다. 그리고 부모님이 모두 1년 차를 두고 일찍 돌아가셨다. 사람은, 아니 내가 참 간사하다는 것을 이때 느꼈다. 문득, 학창시절 나에게 가장 큰 가르침과 도움을 주었던 그가 너무 보고 싶었다. 수소문 끝에 그와 연락을 시도했지만, 그는 죽고 없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나를 보고 싶다고 울면서 찾아왔을 당시, 그가 암 말기 판정을 받았었다는 것을, 그렇게 그는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다.

 

자연과 함께하는 법을 알았던 사람

그와 자주 만나던 시절, 나는 그와 수덕초등학교에서 하루 일과를 보낸 적이 있었다. 화단에 물을 주고, 장작을 패고, 나무에 가치를 쳤다. 그러다 그는 유난히 굽은 나무를 보고는 “하늘에 무게를 견디느라 그렇다.”라는 설명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연못에서 연밥을 따먹었고 그는 말했다. “사람들은 참 바보 같아 동생, 진흙에도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의 아름다움을 말하면서도 정작 이렇게 맛있는 연밥이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어.” 나 역시도 그때 연밥을 처음 먹어봤다.

 

그와 나는 모든 일을 마치고 소사 숙직실 앞 경상에 큰 대자로 누웠다. 하늘은 참 맑고도 높았다. 그때 하늘을 한참을 보던 그가 말했다. “동생, 나는 하루에 일과를 마치고 이렇게 경상에 누워, 하늘 숨을 깊게, 깊게 그리고 길게, 길게 들이쉴 때가 제일 행복해.”

 

"사람이 하늘처럼 맑아 보일 때가 있다. 그때 나는 그에게서 하늘 냄새를 맡는다.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늘을 보세요. 그리고 하늘 숨을 깊고 길게 들이쉬세요. 그러다 보면 당신에게서도 하늘 냄새가 나게 됩니다."

글: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의 철학과 삶의 지혜가 담겨 있는 ‘자기계발서
ㅡ도복 하나 둘러메고ㅡ
(경호무술의 영원한 사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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