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을 처음 만나는 어린 새처럼 하늘을 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늘을 보세요. 그리고 하늘 숨을 깊고 길게 들이쉬세요. 그러다 보면 당신에게서도 하늘 냄새가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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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더는 듣는 사람이다.(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

경호무술창시자 2024. 3. 16. 13:10

리더는 듣는 사람이다

 

<권력자들이 보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만의 색안경을 끼고 세상을 본다. 또한, 자기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 그것은 권력을 가진 지도자나 CEO들이 더 심하다. 권력자들이 보는 세상은 넓은 것 같지만, 실상은 보통 사람보다 좁을 때가 많다. 힘없는 사람들은 듣기 싫은 말도 억지로 참고 들어야 하지만, 힘 있는 사람은 듣기 싫어하는 말을 하는 사람을 외면한다. 평범한 사람들은 권력자의 눈 밖에 나지 않기 위해 듣기 싫어하는 말은 하지 않는다. 결국, 권력자들은 듣고 싶은 말만 듣고,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그들이 아는 세상은 실제와는 전혀 딴판인 경우가 허다하다.

그것을 가장 잘 보여주는 일화가 이승만 대통령 때의 일이다.

그 당시 대통령을 보좌하는 보좌관이 대통령에게 다음과 같이 보고했다.

“각하, 쌀이 부족하여 국민이 식량난을 겪고 있습니다.”

그러자 이승만 대통령이 대답했다고 한다.

“그럼 빵을 먹으면 되지 않습니까?”

 

<보고, 듣고, 말하지 않는다>

사람들은 듣기, 말하기, 쓰기 등 의사 전달 수단 가운데서 평생 ‘듣기’에 가장 많은 시간을 소비한다고 한다. 사람이 듣는 데 소비하는 시간은 쓰기보다 5배, 읽기보다 3배, 말하기보다 2배 정도 많다고 한다. 전체 커뮤니케이션의 약 50% 이상을 듣는 데 사용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학교 교육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쓰기와 읽기, 그리고 말하기에 대해서는 많은 것을 가르치지만, ‘남의 이야기를 어떻게 들어야 하는가?’에 대해서 교육은 거의 이루어지고 있지 않다. 학교 교육뿐만 아니라 학원과 연구소는 물론 가정, 직장, 사회 여느 곳에서도 마찬가지다.

 

<리더는 듣는 사람이다>

대부분의 사람은 자기를 남에게 이해시키려면 자신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려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내 이야기를 하기보다는 남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나의 입장을 이해시키는 데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남을 이해시키고 설득하려면 먼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어야 한다. 남의 이야기를 듣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이야기 자체보다 그 이야기 뒤에 숨어 있는 ‘생각’을 듣는 것이다.

 

커다란 꿈, 원대한 비전을 이루려면 많은 사람과 함께해야 한다. 그리고 여기서 필요한 첫 번째 조건이 바로 남의 말을 잘 듣는 기술이다. 또한, 리더는 말하는 사람이 아닌 듣는 사람이다. 즉 대답하는 존재가 아닌 질문하는 존재임을 의미하다.

 

<고약해>

세종 때 신하였던 고약해(高若海)는 겁이 없어 어전에서 세종을 노려보는 건 예사고 지엄한 어명에도 대꾸도 없이 자릴 박차고 나가 버리곤 했으며 실록에 의하면 반기를 드는 정도가 지나쳤다고 한다. 그런 것을 지켜보던 다른 신하들이 엄하게 벌하라고 했지만, 세종은 그를 끝까지 버리지 않아 나중에 그를 형조참판에 이어 대사헌까지 등용했다고 한다.

 

왜 그랬을까? 그래야 다른 신하들도 용기를 내어 말문을 열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렇게 싫은 소리를 들을 줄 아는 세종이었기에 그가 성군이 된 것이다. 하지만 세종도 사람인지라 경우 없이 반론을 펴는 신하들을 두고 “고약해 같은 놈”이라고 말해 “고약한 놈”, “고얀 놈”이란 말이 생겨났다.

 

<상담전문가>

어느 마을에 상담을 통하여 사람들의 병을 치유하는 유명한 상담가가 있었다. 한 번은 한사람이 그 상담가를 찾아가 얘기했다.

“선생님, 저에게 상담하는 방법과 선생님만의 상담 비법을 알려주세요.”

그러자 그 상담가가 답변했다.

“특별한 비법은 없습니다. 나는 그냥 사람들의 얘기를 진지하게 들어줬을 뿐입니다.”

최고의 의사소통은 침묵의 대화이다. 침묵의 대화는 말을 많이 나누는 것이 아니라 듣고자 하는 간절한 마음이다.

 

<침묵의 힘>

한나라 문 황제 때에 ‘직불의(直不疑)’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도량이 넓어 문 황제의 큰 신임을 받고 있어 관직이 태중대부에 이르렀다. 그러자 궁중 신하들 가운데 그를 모함하는 사람들이 생기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한 관리가 문 황제와의 조회 시간에 대놓고 그를 모함하기에 이르렀다.

“직불의는 형수와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있는데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다른 신하가 직불의에게 물었다.

“이게 어떻게 된 거요?”

그러나 직불의는 그 자리에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았고 머지않아 진실이 밝혀지게 되었다. 그런 우직함을 가진 직불의를 문 황제는 더 큰 신임을 하게 되었다. 왜냐하면, 직불의에게는 형이 없었다는 것 또한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름다운 침묵>

우리는 무엇을 어떻게 말해야 하는지 배운다. 그보다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어떻게 들어야 하는 지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언제 어떻게 침묵해야 하는지 아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침묵의 힘’이다. 벌은 파리에게 굳이 설명하지 않는다. 왜 꿀이 쓰레기보다 좋은 것인지. 『소로우의 일기』에서 ‘소로우(Henry David Thoreau)’는 이렇게 쓰고 있다. “꽃의 매력 가운데 하나는 그에게 있는 아름다운 침묵이다.”

 

<리더는 질문하는 존재다>

‘정답이 사람을 생각하게 할까?’ 아니면 ‘질문이 사람을 생각하게 할까?’ 정답보다는 질문이 사람을 더 생각하게 만든다. 너무나 당연한 이 질문조차도 어떤 사람은 이런 식으로 말한다. “여러분 정답보다 질문이 사람을 더 생각하게 합니다.” 참 바보 같은 답이다.

 

이 같은 것은 우리가 너무 답변하는 데만 익숙해져 있기 때문이다. 한 분야에서 오래 일한 사람일수록 정답을 잘 알게 되어서 질문하는 법을 잊는다. 하지만 정답보다는 질문이 사람들을 더 집중하게 만들고 힘이 있다. 스티브 잡스는 이 질문의 힘을 잘 알고 있는 리더였다. 그가 펩시콜라 부사장인 존 스컬리(John Sculley)라는 사람에게 우리 회사에 와달라는 말 대신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남은 인생 설탕물이나 팔면서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나와 함께 세상을 바꿀 기회를 원합니까?”

 

이 질문을 받은 존 스컬리는 회고록에 이렇게 썼다. “밤새 생각하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걸 거절하면 평생 후회할 거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다음 날 아침에 나는 연락하게 되었다.” 후에, 존 스컬리는 애플 최고경영자의 자리까지 오르게 된다.

 

이같이 사람들은 질문을 받는 순간 다른 생각을 멈추고 그 질문에 집중하게 된다. 하루는 어느 날, 영화를 보고 나오는데 벽에 이런 글귀가 쓰여있었다. “정답을 던지는 영화는 극장에서 끝날 것이다. 하지만 질문을 던지는 영화는 영화가 끝나고 시작될 것이다.” 우리는 주변에 정답을 던지는 영화 같은 사람일까? 아니면 질문은 던지는 영화 같은 사람일까? 리더는 질문하는 존재다.

글: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