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을 처음 만나는 어린 새처럼 하늘을 난다.

하루에 한 번 이상 하늘을 보세요. 그리고 하늘 숨을 깊고 길게 들이쉬세요. 그러다 보면 당신에게서도 하늘 냄새가 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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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TV 칼럼] ‘주먹의 세계’를 떠나며 [밤의황태자, 경호업계의 대부]

경호무술창시자 2018. 8. 12. 22:15

주먹의 세계’를 떠나며

[밤의 황태자, 경호업계의 대부]

야인시대 실존인물들(제일왼쪽 이재영총재, 가운데 조일환회장)


 

'장군의 아들' 의송 김두한의 후계자 조일환회장님을 만나고.

내가 조일환회장님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무술단체의 행사에서 이다. 첫 만남에서는 인사를 드리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뵙게 되었다. 그 이전에 매스컴이나 책을 통하여 조일환 회장님을 알게 되었지만 직접 만나게 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처음 본 조일환 회장님의 이미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풍채가 좋으셨으며 호랑이 같다는 강렬한 느낌이었다.

 

이후 여러 차례 행사에 참석하면서 조일환 회장님을 뵙게 되었고 직접 독대하는 자리까지 갖게 되었다. 조일환 회장님과 여러 이야기를 하게 되었으며 그러면서 느낀 감정은 강한 카리스마와 더불어 생각했던 것보다 자상하고 인자하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때부터 조일환 회장님의 남자다움에 반하여 조일환 회장님의 식구?로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경호원들을 데리고 조일환 회장님의 경호를 하게 되었다.

 

나는 회장님을 만나면 만날수록 회장님의 카리스마에 남자다움에 반하게 되었고 남자에 대하여 협객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는 계기가 되어 섰다. 또한 한 동안 어디를 가든지 회장님의 그림자처럼 함께했고 회장님 또한 정통무술인인 나를 아껴주시고 총재로 대우해 주시다 보니 건달 계 에서는 내가 회장님의 후계자로 소문나기도 했었다

 

이런 나의 모습을 지켜보면서 연맹임원들과 가까운 사람들이 걱정하는 생각으로 나를 반대하기 시작했다. '무술인이 경호인이 건달과 가까이 하면 안 된다.' 는 것이었다. 그것은 이 당시 조일환 회장님께서 건달계의 대부, 밤의 대통령으로 모든 사람들이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럴 때마다 나는 임원들에게 얘기했다.

“나는 어떤 사람을 만날 때 그 사람의 과거가 아니라 현재 무슨 생각을 갖고 있고, 앞으로 무엇을 할 것인지, 그 사람의 비전을 보고 만납니다. 현재 회장님은 많은 사회봉사활동을 하고 계시며 건달계의 큰 형님으로서 건달들이 올바른 협객의 길을 걷도록 인도하는 것을 평생의 목표로 삼고계십니다. 나는 그렇게 살아온, 또한 살아가는 그분의 삶을 존경합니다. 만약 조금이라도 잘못된 길을 걷고 있다면 언제든 말씀해 주시길 바랍니다.”

 

그러면서 나는 회장님과 소년소녀가장 돕기, 수재민 돕기 전국경호무술연무시범대회 등을 함께 개최해왔고 헌혈운동, 일본의 독도망언 규탄대회 등 많은 사회봉사활동도 함께 했다. 또한 나는 회장님과 2000명의 한국 무술 인들을 초청, 일본 도쿄 베이호텔에서 세계평화무도세미나를 함께 개최했으며 이때 일본 최대 야쿠자조직 보스를 소개받아 그의 사부가 되기도 했다.

 

회장님을 통하여 정말 많은 분들을 소개받았다.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친구인 김동회, 낭만파 주먹 낙하유수 김태련, 종로꼬마, 신상사 등 한 시대를 주름잡았던 야인시대 실존인물들과 교류를 하면서 한국 건달계에 명함을 내밀기도 했었다. 특히 드라마 야인시대가 한참 인기리에 방영되고 있을 때는 야인시대 출연진과 야인시대 실존인물들의 만남을 주선해, 삼일절 기념행사인 '만세의 날' 종로 거리에 차량통행을 막고 시가행진 등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이때, 이명박 서울시장(제17대 대통령)과 김두한 의원의 딸과 아들인, 김을동 국회의원과 김경민 대표를 소개받았다.

 

또한 조일환 회장님과 조일환 회장님 주위의 많은 사람들을 만나면서 느낀 감정은 ‘이런 것이 진정한 남자들의 세계구나!’ 하는 생각을 갖게 했다. 서로 애경사가 있을 때마다 자기의 일처럼 슬퍼하고 기뻐하면서 도와주는 모습 그리고 누가 힘들 일이 있으며 서로 자신의 일을 제처 놓고 도와주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깨달음을 가지게 되었다.

 

나 또한 힘든 일이 있을 때 조일환회장님의 많은 도움을 받았다. 특히 기억에 남는 기억은 테러로 안구 뼈가 주저앉고, 얼굴을 80바늘 이상 꿰매면서 많이 다처 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 조일환 회장님이 병 문한을 오셔서 많은 힘이 되었었다. 이 당신 내가 병원에 입원하게 된 동기가 경호업무 중 조직폭력배들과 의 다툼 때문이었고 조일환회장님께서 물심양명으로 도와 주셨기 때문에 사건을 잘 해결할 수 있었다.

 

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신 나에게는 어쩌면 회장님은 아버님 같은 존재였고 회장님이 돌아가시기 며칠 전에 회장님은 나에게 한 말씀 하셨다.

“이 총재 이제 내 동생들 만나지마! 이 총재는 큰일 할 사람이야! 그동안 나를 그림자처럼 지켜줘서 고마워! 이제 대한민국에는 협객은 없어, 이제 이 총재만의 세상을 만들어 가.”

이 말씀을 마지막으로 회장님은 10일쯤 지나 세상을 떠나셨고 이 말씀은 나에게 유언이 되었다.

 

나는 유언을 지켜드리기 위해 회장님의 장례식 때, 전국에 주먹들이 모두 모였고 이미 그들과는 형님 동생 하는 사이였지만 장례식 먼 발취에서만 천안 공원묘지에 안치되는 회장님을 지켜보면서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 주먹세계와는 영원한 안녕을 고했다.

 

어쩌면 내 인생에서 가장 활력이 넘치고 ‘남자다운 삶’을 살았던 때가 아마도 회장님과 함께 했을 때가 아닌가 싶다. 나는 회장님을 통하여 ‘남자의 세계’와 ‘주먹의 세계’를 알 수 있었고, 제자들에게 해줄 무용담 또한 생겼었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회장님을 생각 할 때마다 나는 아래 글귀를 떠올린다.

‘한 마리 사슴이 이끄는 백 마리의 호랑이 무리보다 한 마리의 호랑이가 이끄는 백 마리의 사슴무리가 더 무섭다’

 

그러면서 나는 생각한다.

‘내가 이끄는 우리 국제경호무술연맹이 한 마리 사슴이 이끄는 단체인지 아니면 한 마리 호랑이가 이끄는 단체인지를’

 

[기사]30년을 뛰어넘은 그들만의 우정


대한방송[연재기사] 입력날짜 : 2010. 09.29

조일환회장과 이재영총재

전혀 어울릴 것 같지 않은 두 사람, 그들은 30년이라는 나이차를 넘어 피보다 진한 그들만의 우정을 나누었다.

한명은 '밤의 황태자'로 불리면서 대한민국 건달계의 큰 형님으로 통했던 의송 김두한의 마지막 후계자 협객 조일환 회장, 다른 한명은 경호무술창시자로서 대한민국 '경호업계의 대부'로 통하는 이재영총재

30년 이상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전혀 다른 길을 걸어온 두 사람이 어느 누구보다 진한 그들만의 우정을 나누게 된 계기가 무엇이었을까? 이재영총재를 만나 그들만의 얘기를 들어본다.

Q조일환회장과 어떻게 처음 만났는지.
어려서부터 무술을 좋아하다 보니 당연히 무술과 연관된? '건달' 쪽에도 관심을 갖게 되고 조일환회장님과 고향 또한 같다보니 조일환회장님의 명성은 학창시절부터 익히 알고 있었다. 그러다 경호원으로 활동하면서 우연히 몇 번 소개를 받기도 했지만 내가 국제경호무술연맹의 모태인 한국경호공사와 한국경호무술협회를 설립하면서 그분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

지금은 경호원이라는 직업이 하나의 직업군으로서 확고하게 자리를 잡았지만 경호산업의 초창기 시절만 해도 건달들이 하던 음성적인 일들이 양성화되면서 경호원들이 그 자리를 차지해나가는 과도기였다. 그러다 보니 당연히 경호원들과 건달들이 밥그릇을 가지고 서로 싸우는 형국이었고 건달계의 큰 형님으로 통했던 조일환회장님과 경호회사의 대표인 나는 서로 '적대 적' 으로 만나게 되었다.

Q인연을 맺게된 계기가 무엇인지.
처음 본 조일환회장님의 이미지는 생각했던 것보다 풍채가 좋으셨으며 호랑이 같다는 강렬한 느낌이었지만 생각했던 것보단 자상하고 인자하셨다. 주먹은 주먹을 알아본다는 말처럼 여러 차례 조일환회장님을 뵙게 되면서 회장님에게 강한 카리스마와 남자다움에 반하여 속칭 식구? 가 되었으며 회장님을 큰 형님으로 모시게 되었다.

많은 시간 회장님과 함께 하면서 ‘회장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할 때마다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길 원하셨지만 30년 이상 나이차이가 나는 회장님께 감히 형님이라는 호칭을 사용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걸렸고 이후 오히려 ‘큰형님’이라는 호칭이 더 자연스러워졌다.

Q특별한 관계로 발전하게 된 계기는.
회장님은 말 그대로 대한민국 밤의 대통령으로 통했었고 그런 만큼 회장님의 주위에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건달들 이었다. 하지만 회장님께서는 평생 협객이라는 자부심을 갖고 살아오신 분이시기 때문에 건달이 아닌 정통무술인인 나를 더 아껴주시고 사랑해 주셨던 것 같다.

또한 회장님은 항상 나를 동생이자 연맹 총재로 대우해 주셔서 속칭 보스? 급의 대우를 해주시다 보니 주위 잘나가는 건달들로부터 시기와 견제를 받을 정도였다.

건달들의 생활은 항상 긴장된 생활의 연속이다. 언제 작업? 을 당할지 모르고 언제 자신의 위치를 위협 받을지 모르기 때문에 그들은 친분관계는 ‘보디 존’ 즉 사람과 사람의 거리관계에서 서열과 친밀도를 알아볼 수 있다. 자신이 가장 믿을 수 있는 사람을 가장 최 측근에 두고 활동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하다. 나는 항상 회장님의 옆에서 회장님의 그림자가 되어 회장님과 함께 했다.

Q주량이 대단했다고 하던데.
나는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과 술을 마시면서 나보다 더 술을 많이 먹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하지만 그런 나보다 술을 더 잘 드셨으니 회장님의 술은 상대할 사람이 없었다. 또한 아무리 술을 많이 드셔도 한 치의 흐트러짐이 없으셨다. 아마도 당신이 그동안 살아온 인생이 그분을 그렇게 만들었던 것 같다. 작고하시기 전까지도 일흔이 넘은 연세에도 불구하고 소주를 맥주글라스로 10잔 이상 마시셨고 갈비4인분을 드시고도 갈비탕까지 드실 정도로 식욕 또한 왕성하셨다.

Q많은 분들이 대한민국의 큰 별이 지셨다고 회고하던데
회장님을 모르는 분들은 회장님이 대한민국 건달계의 대부로서만 살아가신 걸로 기억하겠지만 회장님은 누구보다 나라를 사랑하신 애국자이자 협객이셨다. 많은 사람들은 회장님을 생각하면서 육영수여사 피살 사건 때 일본에 대한 항의로써 손가락을 자르신 ‘단지사건’ 을 기억하지만 회장님은 나라를 위한 일이라면 누구보다 제일 앞장서 오신분이다.

사재를 털어 전국에 무궁화 심기운동을 전개하셨고 우리나라에 피가 부족하여 수입한다는 말을 들으시고 전국적인 헌혈운동을 전개하시기도 하셨다. 항상 어느 장소에 들어가던지 태극기만 보이면 그 자리에 멈춰 서서 국기에 대한 경례를 경건하고 엄숙하게 하시던 그 모습이 지금도 기억에 생생하다.

지금은 고인이 되신 회장님을 생각할 때마다 나는 로버트 드니로가 주연을 맡았던 ‘미션’이라는 영화의 대사가 생각난다. “그들은 죽고 저만 살아남았습니다. 하지만 실제로 죽은 것은 저고 산자는 그들입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그렇듯 죽은 자의 정신은 산자의 기억 속에 영원히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조일환(1938년~2009년 7월 13일)은 김두한의 후계자로 알려진 인사. 별명은 '천안곰'.
충남 천안에서 태어나 열일곱살이 되던 해방 전후 충남 천안 지역 주먹계를 평정한 뒤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사건 당시 일본의 사죄를 요구하며 천안 시내 유관순 동상 앞에서 새끼손가락을 잘라 항의한 바 있다. 2005년 3월에는 일본 고이즈미 준이치로 수상의 망언과 신사참배, 역사 교과서 왜곡 중단 반성을 촉구하며 조씨의 아내와 아들이 손가락을 절단했다. 전 세계적으로 특정 사안에 대한 항의표시로 온 가족이 손가락을 절단한 것은 조씨 집안이 처음이다. 세상을 떠나기 직전에는 기독교에 귀의했다.


대한방송 KBN /전명균 기자

 

 

 

 

 

 

 

 

 

 

 

 

 

 



본 게시판의 글은 "도복하나 둘러메고(경호원들의 영원한 사부師父)

라는 책으로 출판중이며 저작권은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에게 있습니다.

도복 하나 둘러메고

저자
이재영 지음
출판사
북랩 | 2014-09-0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길이 있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긴다! 자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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