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늘을 처음 만나는 어린 새처럼 하늘을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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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마TV뉴스

[코마TV 칼럼] 일본 야쿠자보스의 사부(師父)가 되다.

경호무술창시자 2018. 8. 14. 04:17


일본 야쿠자보스의 사부(師父)가 되다.

 

내가 해외에 경호무술을 보급하면서 가장 큰 가르침과 보람을 느꼈을 때가 바로 일본 야쿠자들 앞에서 경호무술 시범을 보였을 때이다.

나의 주관적인 생각이지만 나는 한국은 ()’의 나라이고 일본은 ()’의 나라라고 생각한다. 한국은 선비계급이 그 시대를 이끌어 갔다면, 일본은 무사계급, 사무라이들이 그 시대를 이끌어 갔다.

 

우리는 벼슬에 나가려면 문과시험인 과거를 보고 선비를 등용했고(물론 무과시험 또한 있었지만 하급관리를 선발했음), 일본은 검술과 병법에 능통하면 그 사무라이를 성주가 등용했고, 최고의 명예는 지역에서는 성주의 검술사범이, 전국시대 때는 쇼군의 검술사범이 최고의 명예였다. 우리의 선비들이 문방사우라고 하여 항상 붓과 종이 등을 지니고 다녔다면 일본의 사무라이와 성주들은 지휘고하를 불문하고 항상 두 자루의 검을 몸에 지니고 다녔다. 그것은 천년동안 내란을 겪은 일본이기에 너무나 당연했다.

 

그런 만큼 일본무도는 역사와 전통 면에서 우리보다 앞서 있었으며, 일본 야쿠자들조차도 무도인 들을 가장 두려워하며 존경한다고 했다. 그것은 일본 에도시대(전국시대)를 거쳐 폐도령(칼을 차고 다니는 것을 금지한 법)이 시행되면서 몰락한 사무라이 계급 증, 성공한 이들은 검술이나 무도사범으로, 실패한 이들은 야쿠자로 이어져 내려온 일본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그런 일본에 경호무술을 보급하러 가는 나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 야쿠자에 맞선 조선협객의 마음이었고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마지막후계자로 알려진 조일환 회장님과 함께 가는 길었기에 그 마음은 더했다.

 

이때 일본에 가게 된 동기는 45일의 일정으로 세계평화무도세미나에 참석하기 위하여 였고 한국무술인 400여명이 함께 가게 되었으며 그중 100여명이 우리연맹 임원과 경호사범들 있었다. 이번이 두 번째 참가였으며 왕복항공료와 숙식비용등 행사에 드는 일체의 경비는 세계평화무도연합(통일교 산하재단)에서 후원하였고 행사장은 1차 때와 같이 도쿄베이호텔 이었다.

 

행사에 모든 준비와 일정관리는 조일환 회장님과 세계평화무도연합 사무총장 그리고 내가 준비했으며 그런 만큼 일본에 경호무술을 알릴 좋은 기회였다. 또한 이번이 두 번째 세미나로 나는 이미 첫 번째 세미나에서 경호무술 기술 강의와 연무시범을 통하여 큰 호응을 얻었기에 자신감이 있었다. 하지만 나리타 공하에 도착하자 조일환 회장님은 나에게 너무 뜻밖의 말씀을 하셨다.

이 총재, 이번에 경호무술 연무시범을 보여줄 상대들은 야쿠자들이니 멋진 모습으로 한국 무도인에 기상을 보여 줘야 돼

나는 순간 당황했지만 회장님은 계속 말씀을 이어가셨다.

먼저 평화무도 세미나 때처럼 이총재가 직접 시범을 보여주게, 그 때 만큼만 보여 주면 돼, 그래서 그들의 기를 꺾어버렸으면 좋겠어, 먼저 내가 왔을 때 그들이 몇 명 치마바지(하카마)입고 나와서 다다미 베는 시범을 보이는데 영 볼게 없더구먼.... 이 총재만 믿어!”

 

나는 회장님의 말씀을 듣고 당황스럽기도 하고 답답하기 시작했다. 나는 먼저 1차 세미나 때 경호무술창시자로서 직접 시범을 보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같은 대상인중 알고 프로그램 또한 교육 쪽으로 바꾸어 연맹 경호사범들이 시범을 보이면 나는 한 동작 한 동작 마이크를 들고 설명을 하면서 교육할 준비를 하여 내가 시범을 보일 준비는 전혀 안했고, 그렇기 때문에 나는 도복 또한 챙기지 않았었다.

 

또한 아무리 실력이 있다고 하여도 전혀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에서 즉흥적으로 시범을 보이다가는 받아주는 상대가 부상을 당할 수도 있었고 그런 시범을 야쿠자들 앞에서 할 생각을 하니 여러 복잡한 생각들이 나를 고민스럽게 했다.

 

나는 그렇게 여러 가지 생각을 하며 차안에서 일본에 경치를 감상하고 있는데 다른 차에 사람들이 자꾸 우리들이 탑승한 차를 쳐다보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는 야쿠자들이 공항으로 보내 줬는데 회장님과 나는 벤츠를, 무술인 들과 연맹 임원들은 버스 10대에 나누어 타고 이동하고 있었다. 벤츠는 창문마다 커튼이 처져 있는 것이 특이 했으며 3대의 벤츠가 우리를 에스코트했고, 웬만한 신호등은 무시하면서 진행했다.

나는 그런 모습을 보면서 야쿠자라고 하더니 정말 야쿠자는 야쿠자 인가보다 하고 속으로 생각했었다.’

 

우리들이 타고 간 차가 도쿄베이 호텔에 도착하자 호텔밖에는 10대가 넘는 검정색 벤츠 차량이 일 열로 서있었고 그 차들 주위에는 검정색 정장을 한 건장한 청년들이 이열로 도열하고 서있었다. 우리차가 멈추고 조일환 회장님과 내가 내리자 모든 벤츠 차량 문이 일사불란하게 열리고 뒷좌석에서 중절모를 쓴 중년 신사들이 내렸다. 그리고 조일환 회장님과 한 분씩 인사를 나누었고 조일환 회장님은 그들에게 나를 일일이 소개시켜 주었으며 그들 옆에는 제일교포로 보이는 통역이 있었다.

 

나는 이때 이럴 줄 알았으며 우리 경호사범들에게 정장을 입혀 경호를 시키는 것인데하고 후회를 했지만 이미 우리들은 짐이 많아 호텔에 짐을 풀 생각으로 편한 복장의 옷을 입고 있었다. 다행히 나는 인천국제공항에서부터 조일환 회장님과 함께해야 했기에 정장을 하고 있었다

 

장님은 대한민국 밤의 황태자로 불리며 그들과 여러 번 교류가 있었기에 간단한 일본어를 하시며 그들과 인사를 나누었다. 몰론 통역이 옆에 있어 내 소개를 함께 했지만 분위기상 나는 어쩐지 그들이 우리의 기선을 제압하려고 무척 애쓴다는 생각이 들었다.’ 

 

호텔숙소에 여정을 풀고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도 중년 보스 급의 사람들은 편하게 앉았지만 20여명의 건장한 청년들은 무릎을 꿇고 이열로 앉아서 식사를 했고 문밖 보이는 곳에도 10여명의 검은 정장이 도열하고 서있었다.

나는 젓가락질을 잘 못하기 때문에 그들에게 얕잡아 보이지 않으려고 미끄러운 면이나 회 종류는 젓가락질을 하지 않고 초밥만 30여개 쯤 먹었다. 원래 초밥을 좋아하지 않았고 분위기 또한 그래 나는 속이 거북스러웠다. 또한 그들이 말을 걸어와도 나는 그냥 고개만 끄덕이고 과묵하게 눈에 힘을 주고 있었다. (사실 일본말이라 알아듣지도 못했다.) 

 

저녁 자리가 끝나고 나는 경호사범들과 함께 내일 연무시범을 보일 호텔 행사장인 세미나실에서 연습을 하고 있은데 검은 정장을 한 30대의 남자가 아랫사람으로 보이는 다부진 체격의 두 명의 덩치들과 함께 나에게 다가왔다. 배지를 보니 야쿠자 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마름모 꼭 두 개가 겹쳐있는 금장 배지를 착용하고 있어서 쉽게 알아봤다. 그런데 그는 뜻밖에도 한국말로 나에게 인사를 했다.

이재영 총재님이시죠. 저는 가네사키 준베이라고 합니다. 제일교포입니다.”

나는 한국말이 반가워 그와 악수를 했고 그가 말을 이어갔다.

기억 안 나시겠지만 먼저 번 세미나는 제가 총 관리를 맡았었습니다. 총재님의 강연과 시범을 보고 같은 한국인으로서 가슴이 뛰었습니다. 시간 괜찮으시면 제가 모시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나는 가득이나 초밥 때문에 속이 메스꺼웠던 터라 흔쾌히 승낙을 하면서 그에게 얘기했다.

어디 한국소주 마실 만한 곳이 있습니까? 이왕이면 돼지고기 듬성듬성 썰어놓은 얼큰한 김치찌개도 있으며 더 좋고요

그는 그렇지 않아도 차로 30~40분쯤 가면 한국음식을 하는 곳이 있다고 하여 나는 그렇게 그와 소주한잔을 하게 되었다

 

그는 술을 마시면서 자신이 일본 최대의 야쿠자 조직인 야마구치구미의 중간 보수이며 세계평화무도연합(일본 통일그룹 산하재단) 재무담당국장을 맡고 있고 가라데는 4단이라고 했으며 나보다는 2살이 어렸다. 내가 1차 세미나 때 보인 시범에 감동을 받아 인터넷을 통하여 나에 대하여 많이 알게 되었고 경호무술에 큰 호감을 갖고 있다고 했다.

(현재는 우리연맹 일본지부인 일본경호무술협회 설립준비위원장을 맡고 있다.) 

 

또한 그는 자신이 모시는 보스는 일본에서 조일환 회장님 같은 존재이며 검도5단으로 일본에서는 야쿠자보스이자 검도인 으로 꽤 알려진 유명한 검도인 이기도 하며 내일 그의 보스도 검도시범을 보인다고 했다. 나는 일본의 먼 이국땅에서 같은 한국인 그것도 무술인을 만났기 때문에 우리들은 늦게까지 소주를 마셨다.

 

다음날 행사장에서 그를 만났는데 그는 나에게 다가와 가라데에서 스승이나 윗사람에게 취하는 동작인 양팔을 벌려 인사동작을 하며 오쓰하고 인사를 했다. 나는 고개를 반쯤 숙여 경무하고 인사를 했고 그는 그가 어제 말한 자신의 보스에게 나를 소개했다. 그 보스와 서로 인사를 하고 짧은 인사말을 주고받고 있는데 어느새 오셨는지 조일환 회장님이 다가와 한마디 덧붙이셨다.

“‘한국무도와 일본무도의 멋진 대결을 부탁합니다.. 이 총재! 하네다회장님도 오늘 시범을 보이실 거야

 

그렇게 연무시범 행사는 시작 되었고 볼거리들이 참 많았다. 일본 중, 고등학교 학생들이 북을 치며 북춤으로 행사의 분위기를 고조시켰고 일본 및 제일교포 여성들이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불렀다. 비록 통일교에서 주최한 행사지만 나는 이때 종교를 떠나 큰 감동을 느꼈다. 일본 도쿄의 한 호텔에서, 그것도 일본여성들이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

 

드디어 그 보스, 하네다회장의 시범순서가 되었다.

모든 조명이 꺼지고 하네다회장이 하카마(일본 전통치마바지)에 검을 두 자루 착용하고 나와 인사를 했다. 무대 위에는 좌대위에 베기 용 다다미가 말아져 세워있었고 조명은 하네다회장과 다다미만 비추고 있었다.

 

그는 한참동안 숨을 고르며 다다미를 응시했다.

순간, 정적을 깨고 빠른 속도로 찰나의 순간검광이 번뜩이며 발검이 되나 싶더니 짧은 기압과 함께 그의 검이 허공을 갈랐다. 이어 그는 혈진, 착검의 공작을 취했다.(혈진, 검에 뭍은 피를 터는 동작)

착검을 한 후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 다다미가 미끄러지듯 베어지며 다다미가 포개지듯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 이후에도 한참의 정적이 흐른 후 그가 인사를 했고 모든 사람들이 박수를 쳤다.

나는 순간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박수를 칠 수도 없었고 그냥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었다는 표현이 맞을 것이다.

 

나는 그동안 수많은 검도시범을 봐왔지만 이처럼 단 한 번의 베기 동작만 시범을 보이는 것은 처음 보았다. 또한 그 간단하고 단순한 동작이 이렇게 길게 느껴지고 전율로 다가올 줄은 더더욱 몰랐다.

(나는 이때의 경험 때문에 이후 검도 마니아가 됐고, 현재도 사단법인 세계검도협회 고문으로 활동하고 있다.)

 

드디어 나와 우리 경호사범들의 시범이 이어졌다.

나는 도복을 준비해 오지 않았기 때문에 정장을 한 상태로 시범을 보였다. 원래 나의 시범은 계획에 없었다는 사회자의 멘트와 함께 시범을 보였으며 나는 그동안 수련하던 나의 모든 것을 보여준다는 생각으로 오카모토 타로의 예술은 폭발이다.’라는 말처럼 나는 가슴을 타고 흐르는 거침없는 에너지를 분출시키며 시범을 보였다.

 

그런데 모든 시범을 성공리에 펼치고 있는데 갑자기 "찌지직" 하며 내 양복바지가 찢어졌다. 경호무술의 던지기는 온몸을 이용하여 던지는 동작이 많다보니 동작이 크기 때문에 바짓가랑이가 찢어진 것이었다.

하지만 나는 멈추지 않고 계속하여 시범을 보였고 바지는 계속하여 찢어져 팬티까지 보일정도였다. 그렇게 모든 시범이 끝났을 때 나의 바지는 엉덩이부터 무릎뒤쪽까지 길게 찢어졌고, 나는 그런 양복으로 인하여 부자연스러운 움직임 때문에 땀이 비 오듯 했다.

 

모든 시범을 끝내고 인사를 마치자 갑자기 검도시범을 보였던 하네다회장이 일어나 기립박수를 쳤다. 이어 한, 두 사람씩 일어나더니 모든 사람들이 일어서서 기립박수를 쳤다. 나는 팬티가 보일정도로 바짓가랑이가 찢어졌지만 당당한 자세로 무대에서 걸어 내려갔고 그들은 그때까지도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지금도 이때의 감동을 생각하면 심장이 두근거린다.’

또한 나는 이때 시범을 보고 반했다는 일본의 국민가수 사쿠라다 준코와 인사를 하고 인연을 맺었다.

 

다음날 가네사키 준베이로부터 연락이 왔다. 자신의 보스가 34일의 일정으로 일본관광을 시켜준다고 함께하자는 전화였다. 우리는 그렇게 조일환 회장님과 나, 그리고 하네다 회장과 준베이는 벤츠에 나누어 타고 일본관광을 하게 되었으며 나와 하네다회장이 함께 탑승했고 준베이가 통역을 맡았다. 물론 이때도 3대의 벤츠와 야쿠자 조직원들이 에스코트를 하였으며 총 5대의 벤츠가 움직였다.

 

우리들은 온천으로 유명한 후쿠오카 노천탕에도 가보고 일본의 전설적인 검성 미야무토 무사시의 고향도 가봤으며 그리고 일본의 전통연극인 가부키도 구경했다. 나는 이때 하네다 회장의 설명으로 가부키의 '미에'라는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가부키에서 감정이 고조되는 순간의 정점에서 취하는 정지자세를 미에라고 한다. 오히려 그 정지자세 즉, 미에가 가부키를 더 격정적으로 보이게 한다고 했다.’

그런 얘기를 듣고 보니 어쩌면 하네다 회장이 보였던 베기 시범에서 나는 미에를 느꼈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3일 동안 일본여행을 하며 하네다회장과 정말 많은 얘기를 나누었고 항상 밤에는 무도 얘기에 밤이 새는 줄 몰랐다. 또한 내가 일본무도인 아이기도(일본합기도), 이아이도(거합도). 가라데(공수도), 찬바라 등 일본무도에 대하여 자세하게 알고 있는 것에 대하여 그는 놀라워했다.

 

마지막 날은 하네다회장의 집으로 일정이 예약되어 있었다. 그의 집은 긴자에서 가까웠으며 일본야쿠자 최대의 조직 보스답게 야외 노천탕과 수영장이 있었고 정원이 정말 아름다웠으며 집은 일본식 목조 건물이었다. 저녁에 만찬회가 있다고 하면서 나의 치수를 어떻게 알았는지 나의 하카마를 준비해 놓았다. 내가 갈아입기를 껄끄러워 하자 준베이는 로마에 가면 로마법을 따르라고 하면서 '최고의 손님에 대한 예우'라고 하여 나는 하카마로 갈아입었다.

 

하카마를 입고 하네다회장의 저택에 붙께 있는 행사장에 가니 분위기는 엄숙했고 야쿠자조직원들은 검은 정장을 하고 이열로 도열하고 무릎 끓고 앉아있었다. 하네다 회장과 나만 하카마를 입었다. 이어 하네다 회장이 얘기를 했고 준베이가 통역을 했다.

오늘 나의 형제, 가족과 같은 모든 식구들 앞에서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 센세이(선생님)를 나의 경호무술 사부로 모십니다. 여기계신 모든 분과 이 검 한 자루가 그 증인과 증거가 될 것입니다.”

얘기가 끝나자 나는 그와 절을 하고 술을 반잔씩 마신 후 다시 술잔을 바꾸어 나머지 술을 다 마신 후 절을 하였다.

 

나는 그렇게 일본 최대 야쿠자조직 보스의 사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에게 한 자루의 검을 선물 받았다.

(나중에 이 검을 한국으로 가져오는 과정에서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으며 인천남동경찰서에서 소지허가증을 받은 후에야 검을 찾을 수가 있었다.)

 

일본에서의 모든 일정이 끝나고 한국으로 돌아오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을 때,나는 그동안 일본에서 겪었던 모든 일들이 필름처럼 내 눈앞을 스치고 지나가는 것을 느꼈다. 그러면서 나는 하네다 회장을 생각하다보니 예전에 보았던 일본영화 ‘카케무사가 떠올랐고 그 영화중 다케다 신켄장군의 용병술을 되새겼다..

 

() 바람처럼 빠르게,

() 숲처럼 조용하게,

() 불처럼 용맹하게,

() 산처럼 무겁게,

 

본 게시판의 글은 현재 "도복하나 둘러메고(경호원들의 영원한 사부師父)라는 책으로 출판중이며 저작권은 경호무술창시자 이재영총재에게 있습니다.


도복 하나 둘러메고

저자
이재영 지음
출판사
북랩 | 2014-09-05 출간
카테고리
자기계발
책소개
길이 있어 가는 것이 아니라, 내가 감으로써 길이 생긴다! 자신...
가격비교

 

 

일본 세계평화무도연합 세미경호무술기술강의 및 연무시범중 

 

세계평화무도세미나 환영만찬회에서(일본 도쿄베이호텔)

 

제일교포 및 일본여성들이 한복을 입고 아리랑을 부르는 모습

 

일본의 국민가수 사쿠라다 준코와 함께

 

일본황궁 사무라이 동상 앞에서

 

 

장군의 아들 김두한의 마지막후계자 조일환 회장님과 함께